그리하여, 내내 정오正午의 궤를 그릴 이들에게
뜨거운 허벅지 님 [그 연하남이 남자력을 어필하는 방법(외전)]
글/소설

  카츠라 코타로는 일생일대의 문제에 직면했다. 며칠, 몇 달, 혹은 몇 년 이상 그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고질병과 같은 그 문제는 바로…… 시라카베 사유네가 자신을 귀여워한다는 것!

 

  물론 그것까지는 좋았다. 괜찮았다. 십 년 가까이 짝사랑하다 겨우 연인 사이로 발전한 지 곧 일 년을 맞이하는 사이였지만, 어찌 됐든 사유네 또한 자신을 남자로서 좋아하고 있으니 고백 또한 받아들인 것 아니겠는가. 비록 자신이 여섯 살 연하인데다가, 어릴 때부터 쭉 귀여움만 받고 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뭐가 됐든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카츠라는 그 말에 마음 깊이 공감했다. 사유네는 자신을 귀여워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너무, 과하게, 매우, 심각하게. 이쯤 되면 남자로서의 매력은 1 정도고 나머지 99는 아는 동생으로서의 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름하야 [어떻게 해야 사유네에게 남자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모임은 그로 인해 만들어졌다. 장소, 카츠라 코타로의 집. 날짜, 당일. 멤버, 카츠라 코타로, 사카타 긴토키, 타카스기 신스케, 사카모토 타츠마. 모인 이유, 어떻게 해야 사유네에게 남자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라는 카츠라의 고민을 해결해 주기 위함. 물론 그 고지식한 카츠라 코타로가 남자력이니 뭐니 하는 요즘 단어를 알 리가 없으니 해당 모임의 이름은 이 네 사람 중 그나마 최신 문물에 빠삭한 타츠마의 주도로 지어졌다. 뭐가 됐든 사유네가 알게 된다면 뒷목 잡고 쓰러지거나, 혹은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을 경우 코타로 군, 이런 점도 귀여워~라고 할 수도 있고…….

 

"남자다움! 하면 포마드지. 머리카락에 왁스 칠하면서 앞머리 넘기는 모습, ~ 그거에 뻑 가거든."

"긴토키, 네 녀석은 대체 언제적 구닥다리 소설을 읽은 거냐? 본인이 곱슬머리라 할 수 없는 일을 이번 기회에 즈라를 통해 대리 만족할 속셈인 게 눈에 훤하군."

"즈라가 아니다, 카츠라다! , 그런가. 포마드란 말이지……."

"즈라 넌 또 그걸 적고 있는겨?! 너는 포마드가 문제가 아니라, 그 치렁치렁한 뒷머리부터 잘라야 한당게."

"그건 절대 안 된다! 사유네의 이상형은 머릿결 좋은 장발의 남성. 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 사유네는 나를…… 크흑."

"어이, 고작 그 정도로 식어 버리는 사랑이겠냐고……."

 

  이런 식으로 고민 해결은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얼렁뚱땅 모임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몇 시간의 회의인지 잡담인지 끝에 나온 방법 몇 가지를 추리자면,

 

1. 목울대를 보이며 벌컥벌컥 물을 들이마신다. (입가에 살짝 흘러내린 물을 거칠게 닦아내면 금상첨화!)

2. 나른~ 하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다. (여기서 핏줄이 보인다면 나이스!)

3. 빵 봉투를 와일드하게 뜯는다. (! 터지는 소리가 나야 함!)

4. 다이나믹하게 재킷을 걸친다. (가죽 재킷이라면 더욱 좋음!)

5. 샤워 가운을 벗으며 여태 단련한 근육을 선보인다. (과하면 망함! 은근슬쩍이 중요!) ☆☆☆」

 

  정도가 나왔다. , 일 번부터 사 번까지는 별도의 어려움 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오 번은 대체 어떻게? 카츠라는 긴토키, 타카스기와 함께 사는 중이고, 사유네는 이혼 후 남편 명의였던 집을 처분하고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을 구해 그곳에서 거주 중이었다. 사유네를 카츠라의 집으로 부른다? 긴토키와 타카스기 때문에 놀림거리만 적립하게 될 게 뻔하다. 탈락. 카츠라가 사유네의 집으로 간다? 뜬금없이 찾아가서 목욕하겠다고 한다니, 누가 봐도 개수작인 데다가 너무 뜬금없다. 탈락. 그럼 러브호텔에 간다? ……. 안타깝게도 코타로사유네 커플은 일 년 동안 러브호텔은커녕, 거사를 치룬 적도 전무했다. 이유야 당연히…… 이하 생략.

 

  카츠라는 자신과는 다르게 연애 경험이 꽤 있으신 친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게 어디서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마인드냐며 대차게 까이고 말았다. 이 정도도 알아서 하지 못하면 사유네가 널 퍽이나 남자로 보겠다! 하는 잔소리까지 덤으로 들으면서. 그 말에 카츠라는 큰 타격을 입고 세상이 무너진 듯 절망했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세 사람은 모임을 파하고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

 

  그리하여 대망의 데이트 날. 근 일 년 동안 사유네와 데이트는 손으로 셀 수도 없이 여러 번 했다지만, 오늘 데이트의 긴장도는 마치 사유네와 첫 데이트를 했던 날과 맞먹었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생수병, 준비 완료. 저녁쯤 쌀쌀해지면 걸칠 가죽 재킷, 준비 완료. 빳빳하게 다려 놓은 흰 셔츠, 준비 완료. 간식용으로 챙긴 봉투에 담긴 빵, 준비 완료. 나가기 전 한 번 더 옷매무새와 준비물을 점검한 카츠라는 비장한 눈빛으로 현관을 나섰다.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사유네에게 나의 남자력을 보여 주고 마리라……!

 

  데이트 자체는 평소와 같았다. 밥을 먹은 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미리 예매해 둔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유네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것. 마침 식당까지 가는 길에 사유네의 집이 있어 카츠라는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며 곧 나올 사유네를 기다렸다.

 

"코타로 군, 나 왔어."

", 사유네. 역시 자네는 오늘도 아름답군."

"후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진지하게 하는 게 코타로 군의 귀여운 점이지."

젠장. 오늘도 만나자마자 귀엽다는 말을 듣고 말았다. 이런 카츠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유네는 싱글벙글이었다. 오늘도 귀여운 나의 코타로 군. 정말이지 귀엽다니까. 라는 생각이 대놓고 이마에 써 있는 듯한 표정으로……. 카츠라는 여기서 일 번을 실행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적기는 바로 지금!

", 걸어서 그런지 조금 목이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굳이 해도 되지 않을 어색한 말까지 붙여가며 가방에서 생수병을 꺼낸 그는 사유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길 바라며, 애써 사유네를 의식하지 않은 채 뚜껑을 열었다. 여기까진 성공. 카츠라는 난생처음으로 고작 물을 마시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 것이었나, 하는 것을 느꼈다. , 이제 팔을 들어 물을 목 뒤로 꿀꺽꿀껌 넘기기만 하면…….

 

"!"

 

  극도의 긴장 상태였던 탓일까, 하필이면 물이 기도로 넘어가 거하게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그것도 마셨던 물의 일부를 뱉어내면서 아주 추한 꼴로. 사유네의 원피스에 물방울무늬로 진한 자국이 남은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중 몇 방울은 그쪽으로 튄 모양이었다.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는데. 폼 좀 잡아 보려다 망신만 당한 셈이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었다. 차라리 화라도 내주면 좋겠는데, 이런 상황에서마저 사유네는 자신을 아이로 보는 건지 괜찮은 거냐며 손수건을 꺼내 제 등을 두들기며 입가를 닦아 주었다. 비참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모양이군. 카츠라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훌쩍임을 꾹 참아야 했다.

 

  이 번, 나른하게 소매 걷기. 본디 파스타처럼 소매에 소스가 묻을 가능성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땐 셔츠 소매를 걷어야 하는 법. 도대체 나른하게 소매를 걷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카츠라는 카츠라 나름대로 셔츠 소매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본 사유네는…….

 

"반대 손으로는 힘들지? 내가 걷어 줄게."

 

  라며 도리어 자신이 카츠라의 소매를 걷어 주고 만 것이다……. 이로써 두 번째 작전도 무참히 실패. 남은 것은 다이나믹하게 재킷 걸치기, 빵 봉투를 와일드하게 뜯기, 샤워…… 샤워 가운을 벗고…… 하여튼 그거. 이 세 가지만은 기필코 완수하여 사유네에게 자신의 남자력을 어필해야 했다.

 

  다음으로 간 카페에선 평범한 연인의 이야기가 오갔다. 곧 보러 갈 영화가 기대된다든가, 다음에는 연극을 보러 가고 싶다든가……. 곧 다가올 일주년엔 무엇을 할지 상의하기도 했다.

 

  싫어하는 것을 할 땐 유독 시간이 느리게 가고, 좋아하는 것을 할 땐 유독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카츠라에겐 사유네와의 시간이 그랬다. 금세 영화 시작 시각이 다가와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늘 가던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 제목은 금단의 사랑. NTR을 좋아하는 어느 누구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볼 수 없는 어른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살색 장면이 난무하는 영화는 결코 아니었다.

 

  어찌 됐든, 좌석에 앉은 카츠라는 다시 한번 힐끔거리며 사유네의 눈치를 봤다. 영화 시작 전 광고 타임, 빵 봉투를 뜯으려면 지금 이 순간 말곤 기회가 없다!

 

"사유네, 영화 보면서 빵이라도 먹지 않겠나?"

"? 코타로 군도 참. 방금 식사하고 카페에서 음료까지 마셨잖아. 배불러서 빵까지는 못 먹지~"

 

 이렇게 세 번째 작전도 물거품이 되었다. 마지막은 영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이제 네 번째 작전에 모든 것을 거는 수밖에 없어……! 기껏 취향인 영화를 보는데도 카츠라의 머릿속은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스크린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머리를 굴리다 보니 어느새 스태프 롤이 올라가고 있었다.

 

"코타로 군, 이만 갈까?"

"? , 어어. 그러지."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나오니 밖은 어느덧 어둑어둑한 밤하늘이 끝에서부터 몰려와 해를 쫓아내고 있었다. 마침 선선한 바람도 불고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재킷을 다이나믹하게 걸칠 타이밍이었다. 미리 챙겨둔 가죽 재킷을 가방에서 꺼낸 그는 제법 과장된 몸짓으로 겉옷 입기를 시도했고, 그 결과는…….

 

", 으악?!"

 

  가죽 재킷에 달린 지퍼가 가방끈에 걸리며 재킷을 걸치기는커녕, 팔을 반도 넣지 못한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고 말았다. 이쯤 되면 세상이 자신을 저주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네 번의 시도 중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남자력을 보여 주지 못할 수 있는 건지…….

 

", 괜찮니? 가만히 있어 보렴. 이것만 풀면 될 것 같아."

"……아아. 부탁한다, 사유네……."

 

  물을 마시는 것도, 소매를 걷는 것도, 재킷을 걸치는 것도…… 전부 사유네의 도움만 받았다. 이러면 남자로 보이기는 차치하고, 오히려 더 아이처럼 보이는 것 아닌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뒤늦은 후회와 현실 자각 타임이 파도처럼 밀려와 정신 놓기 일보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라? 비가 엄청 오네."

"소나기인가?"

 

  부랴부랴 핸드폰 어플로 날씨를 확인해 보니 소나기가 아니라 새벽까지 쏟아지는 폭우인 모양이었다. 데이트 날은 분명 며칠 전에 미리 날씨를 확인해 두는데, 왜 갑자기 이런 비가…….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서 쓰고 가기엔 너무나 거센 빗방울이었다. 게다가 아침이 돼서야 그치는 듯했고. 난처해진 두 사람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영화관 바로 옆 (건전한) 호텔이었다.

 

"어쩔 수 없네. 오늘은 저기서 묵을까?"

 

  설마 첫 외박을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깐, 이거…… 어쩌면 다섯 번째 작전을 실행할 찬스……?!

 

그 연하남이 남자력을 어필하는 방법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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