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토키의 얼빠진 얼굴이 제일 먼저 보였다. 자리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카츠라를 보고 있던 긴토키는 과묵했다. 정말로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카츠라는 그런 긴토키에게 무슨 일 이느냐고 묻기도 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여나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작용하지 않았을 눈치가 요상하게 잘 작동했다.
“카츠라, 숨기는 거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해!”
카구라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긴토키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낯을 한 카구라가 카츠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매서운 시선이 카츠라에게 닿았다. 하지만 정작 그 시선을 받 는 카츠라는 두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숨기는 것이 있냐고? 카츠라는 무척이 나 고심했다. 숨기는 것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것이 많았다. 긴토키의 속옷을 숨겨서 곤란하 게 만들었다던가, 카구라의 간식을 몰래 먹어 버렸다던가,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 게 된다면 큰일이 날지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물어 온다면 답을 해 주는 편이 좋지 않을 까? 카츠라는 제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사실대로 말하고 우정을 지키느냐, 무슨 소 린지 모르겠다고 잡아떼느냐. 고민하던 카츠라는 결국 입을 열었다.
긴토키와 카구라에게 했던 자신의 숨겨왔던 행동들을 모두, 그리고 낱낱이. 물론 이야기를 하자마자 이성을 잃은 두 사람이 카츠라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말을 꺼낸 이유는 카츠라가 생각하고 염려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물론 카 츠라가 생각해낼 만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기도 했고, 다른 이들이 그 렇게까지 관심을 보일 만한 일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카구라는 카츠라가 요새 연애로 즐 거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며 껄렁하게 말을 해왔는데, 그런 카츠라에게 긴토키 또한 추레 한 사람처럼 껄렁거리는 말투를 사용했다. 상대는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은 둘은 카츠라에 게 누구와 연애를 하기에 무적의 솔로 연합을 탈출하려고 하는 것이냐며 눈에 불을 켜고 달 려들었다.
“그만들 좀 하세요, 둘 다! 왜 이러고 있는 거예요?”
다행히도 신파치가 들어와 카구라와 긴토키를 만류를 했다.
“카츠라 상을 부른 건 두 사람이잖아요. 특히 긴상, 진지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더니 무슨 짓이에요!”
“하지만 이 자식이 내 푸딩을 다 먹었다고 했다, 해!”
“리더의 것인 줄 알았으면 안 먹, 으으억!”
자신의 간식을 먹은 카츠라를 응징하고 있는 카구라를 보고 있던 신파치가 다시 말리려고 다가갔으나, 긴토키가 신파치의 근처로 왔다. 신파치는 그런 긴토키에게 적당히 하고 같이 식사를 하게 준비를 도와달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긴토키의 속삭임을 듣기 전까지는. 카츠 라가 요새 좋은 분위기를 이루며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신파치의 안색이 사라졌다. 그늘에 가려진 표정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하면, 긴토키와 카구라보다 더 광기 넘치는 눈이 희번뜩 뜨였다.
“그래요... 연애를... 하신다고요?”
“연애라니, 난 아직 그런 걸....”
“연애, ...연애라.... 무적의 솔로 연합을 배신하고 결국 연애를 하고야 마셨다는 소리시군요.”
“무적의 솔로 연합을 들은 적이 없는데, 아니, 그나저나 그쪽도 함께 한 거였나?”
무적의 솔로 연합이니 뭐니 하는 것에 속한 적 없는 카츠라로서는 세 사람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니, 연애 안 한다니까. 그렇게 말해도 이미 흑화한 세 사람은 카츠라를 다 시 솔로 연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으로 보였다. 특히, 두 사람은 만류했 던 신파치를 중심으로.
카츠라는 이대로 있다가는 말도 안 되는 일로 자신이 고통받을 것이 뻔하다며 세 사람이 작전을 궁리하는 사이 잽싸게 밖으로 나갔다. 카츠라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카구라가 짐승처럼 뒤를 따라잡았다.
“배신은 곧 할복이다! 죽어라, 해!”
야토족의 전투력을 이런 곳에 쓰는 거냐! 카츠라는 바닥에 넘어지듯 굴러 한 번 겨우 살아 남았다. 연애라니, 도대체 자신이 언제 연애를 했다고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가 없 었다. 모래에서 먼지가 일 만큼 빠르게 뛰어가던 카츠라는 바로 눈앞에 있는, 그러니까, 이 미 이전부터 흠모했던 사유네가 지나가고 있는 것에 망측하게 뛰는 것도 멈추고 바로 섰다. 뛰느라 흐트러짓 옷무새를 순식간에 가다듬고, 사유네의 앞에서 수줍으면서도 부드러운 미 소를 지었다.
“조, 좋은, 푸딩이네.”
“......무슨 말이니?”
좋은 오후라고 말할 걸, 급하게 뛰어오며 푸딩 먹어서 미안하다고 소리를 친 탓에 나온 실 수였다. 카츠라를 놓친 카구라가 이리저리 둘러보며 카츠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카츠라는 자신을 보며 눈을 깜박거리는 사유네의 팔을 잡아 살짝 당겼다.
“일단, 지금 당장 설명할 수는 없지만 따라와 줄 수 있겠나? 이곳에 있으면 위험해서 말이 야.”
“위험하다니? ...푸딩 때문인가?”
카츠라의 행동을 보며 짓궂게 말을 한 사유네 덕에 카츠라의 얼굴이 빨개졌으나, 크게 소 리를 내며 카츠라를 부르는 신파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골목으로 빠르게 빠졌다. 사유네 의 팔을 힘으로 잡아끈 것 같아 미안했지만, 예상외로 자신의 뒤를 따라와 주는 사유네를 보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미안하네! 이렇게 억지로 끌고 오려던 건 아니었어. 그, 그저, 오해를 하면... 함께 곤란 해질까 봐....”
“아까 말한 푸딩 관련으로?”
“아, 아니네! 푸딩이 아니라, 푸딩이 아니라... ...여, 여우!를 다들 보고 싶다고 그렇게 성 화여서 말이야.”
하하, 웃는 카츠라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여우라니. 연애와는 완전히 다른 단어 아 닌가.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 연애하고 싶다고, 그런 이야기를 당연하게 말하는 것이 사내대 장부거늘, 카츠라는 사유네 앞에서는 입이 봉해진 사람처럼 제대로 말을 하질 못했다.
“여우? 여우가 보고 싶은 거니? 그렇다면 보러 갈까?”
“으, 응?” “동물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될 테니, 둘이서 보러 가자.”
예상치도 못한 데이트다. 카츠라는 자신이 먼저 데이트를 하자고 말을 해야 했음에도, 되 려 사유네가 자신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청하는 것에 미안해하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적극적 인 사유네의 행동에서 카츠라는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았다. 솔로 모임이니 조합이니 하는 긴토키와 카구라, 신파치 때문에 곤혹스럽긴 했지만, 결과적으론 사유네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연애는커녕 데이트도 못 하게 하려고 방해하려는 속셈이었지만, 카츠라 는 사유네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카츠라는 먼저 데이트를 청한 사유네에게 고맙다는 이 야기를 해야 할지 무척이나 고심했다. 물론, 그 탓에 사유네가 먼저 카츠라의 손을 잡아 쥐 었지만. 두 사람은 카츠라가 말한 여우를 보러 가기로 했다. 연애를 여우라고 말하긴 했지만 뭐 어 떤가. 사유네와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데이트였기에 빼입지도 못했고 영 못 보일 꼴만을 보인 것 같았지만 사유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무척이나 좋았다. 특히나 사유네가 이것저것 같이 보자며 카츠라를 이끌 때마다 스킨십을 하는 점이 너무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겠지만, 카츠라는 뭔가 사유네와 있을 때 자신 이 능숙하고 부드럽게 리드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탓에 갈피를 못 잡고 있었 다. 어떻게 해야 남자답게 사유네를 리드해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궁리하던 카츠 라는, 여우를 볼 수 있는 실내 동물원으로 사유네와 함께 걸어 들어왔다. 여우에게 먹이를 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필시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 여우를 만지는 시간은 따로 없느냐 물었다. 그러자 사육사가 곧 여우를 만지며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거라 이 야기했다. 보통은 어린아이들 위주로 진행이 되는 체험 시간이었지만, 이때 즈음에는 왜인 지 커플이 많아 많은 이들이 짝을 지어 여우를 만지고 있었다.
사유네와 카츠라도 마찬가지였다. 사육사의 말에 따라 여우들에게 간식을 주면서 모이도록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카츠라 쪽으로 여우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카츠라의 주변에 사람들이 있게 되고, 여우들이 카츠라에게 붙어 사유네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사태가 발생 했다.
“여우가 날 좋아하는군!”
물론, 카츠라는 여우들로 인해 시야가 보이지 않아 사유네가 멀어진 것도 몰랐다. 사유네 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은 카츠라는 사유네를 불렀지만, 답이 없어 제 얼굴에 붙은 여우 를 떼어내며 사육사에게 건네주었다. 이제야 시야가 트이니 근처에 서서 카츠라를 보고 있 는 사유네가 보였다. 데이트를 하기 위해 나온 건데, 여우에게 인기가 많다니! 카츠라는 곧 장 여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에게 여우를 떼어 건네주고는 아주 작은 한 마리를 안고 왔다. 작은 여우는 불편한 듯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었지만, 이내 사유네를 보고는 얌전해졌 다.
“다른 아이들보다 왜소하고, 얌전한 아이네.”
“도망가고 싶었으면 내려달라고 했을 텐데, 가만히 있는 걸 보면 자네를 좋아하는 듯해.”
카츠라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하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인 지가 되자 부끄러우면서도 열이 몰렸다. 하지만 말을 한 것이 후회가 된다거나 하진 않았 다. 되려, 이런 말을 사유네에게 더 해 주고 싶었다. 사유네는 여우에게 손을 뻗었다. 여우는 카츠라의 품에 안겨 있다가 사유네에게 넘어갔다. 사유네의 품에 안긴 여우가 가만히 기 댔다. 작은 온기가 사유네에게 애정처럼 전해졌다. 그 모습을 보던 카츠라는 사유네에게 안긴 작은 여우가 눈을 감고 파고드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낮잠을 자야 하는 어린 여우인 것 같았다. 어린 여우를 찾고 있었던 사육사가 여 우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새끼까지 데리고 온 부모 여우가 있는 것 같다고, 데리고 있어 줘 서 고맙다며 작은 여우를 데리고 갔지만, 사유네는 그 작은 온기의 여운에 사육사의 등을 쳐다보았다.
“아이도 저 여우만큼 작을까 싶네. 이제 돌아갈까? 여우도 봤으니, 돌아가는 것도....”
“...그,”
카츠라는 입을 열으려 했다. 사유네에게, 오늘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하면 서. 남자답게!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에, 흉흉하게 나타난 긴토키, 카구라, 신파치를 마주하 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여어, 여기서 만나는군. 여우를 보고 있던 참이었나? 이거 우연이네. 우리도 그러고 있었 거든.”
“즐거워 보이는데. 우리도 여우 볼 줄 아는데 말이다, 해.”
웃으며 다가오는 일행을 물릴 수 없었던 카츠라가 얼어붙었다. 완벽하게 따돌렸다고 생각 했더니, 결국 데이트를 마무리 짓기 전에 마주쳐버린 것이다. 사유네는 그런 긴토키와 카구 라, 신파치를 보다 카츠라를 보고서는 부드럽게 웃었다.
“마침 여우를 다 보고 갈까 하던 참이었으니, 우린 먼저 가지.”
쉽게 떼어내는 말이었다. 사유네의 너와 둘이 가고 싶다는 말을 들은 카츠라는 사유네를 보고서는 쭈뼛이며 그 옆에 섰다.
“여우는 저쪽에 있으니 즐겁게 보렴.”
사유네는 말과 함께 카츠라의 손을 쥐고 성큼 걸었다. 감히 사유네에게 말을 하는 건 두려 운 세 사람은 카츠라가 멀어지는 것을 보기만 했다.